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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답사자료실
작성자 김프란치스코
작성일 2013-04-27 (토) 16:12
ㆍ추천: 2  ㆍ조회: 7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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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선영 도로테아]

<솔뫼 성지를 다녀와서>

 

쪽빛으로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펼쳐진 솔뫼 성지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머리 위에서는 청아한 새 소리가 지저귀며 맞아 주었고
두 팔 벌려 따뜻하게 환영하는 듯한 모습의 예수성심상 또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상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그걸 보니 예전에 용인 성직자묘지를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 보았던 나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그 모습을 솔뫼 성지에서 다시 보게 되니 그 감회가 새로웠다.

야외에 나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실내에서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더 깊이 묵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들어가며 오른쪽을 살펴보니 신앙고백비의 내용이 뭉클하며 가슴에 와 닿기에
한동안서서 그 내용을 차근차근 읽으며 성지에서의 감동을 새겨 보았다.

입구에서 얼마 안 들어가다 보면 옛 로마의 원형극장을 본떠 만든 솔뫼 아레나가 눈에 띈다.

예수님의 12제자상이 빙 둘러싸고 있어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으로 아레나에서 행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천천히 성지를 둘러보며 먼저 생가 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 된 소나무 동산(솔뫼)아래 나지막히 자리 잡은 생가는 크지도 않고
소박한 옛 한옥의 모습으로 대청을 사이에 두고 방이 2개 있고 부엌이 있으며
마당 한쪽에는 우물과 장독대도 있고 생활에 쓰이는 물건들이 이곳저곳에 있으니
사람이 사는 듯하여 금방이라도 누군가 나와 맞아줄 것만 같았다.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시며 순교자이신
김대건 안드레아님이 태어나 사시던 곳이기에 그 기를 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루 정면에 걸려있는 김대건 신부님의 영정 또한
그곳이 생가임을 새삼스레 일깨워 주어 잠시 고개를 숙이고 묵상을 하였다.

지금 생가터는 도지정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어
우리들에게 신앙의 후손으로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김대건 신부님이 탄생하기까지 영성에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은 위로 4대까지의 조상들인
증조부(김운조),종조부(김종한),조부(김택현),부(김제준)가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임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자녀의 신앙은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도록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걸어 솔뫼 동산에 오르자 보이는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져있었는데
세월의 흔적과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아직도 20대 청년 사목자로서의 뜨거운 열정이 그대로 묻어난다고 할까?
그에 비해 현재 나의 신앙생활은 습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니 부끄러움이 일었다.

과연 15세 소년의 그 어디서 주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샘솟았고 25세 때 순교하시기까지
사목을 위해 멈추지 않았던 왕성한 활동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되리라는 다짐 또한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성지에 있는 솔방울 하나 조차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그 중 똘망똘망한 솔방울 2개를 기념으로 가방에 챙겨 넣었다.

11시에 솔뫼 성지 성당에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있었다.

멀리 전북 부안에서 온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다양한 순례객들이
김대건 신부님을 기념하는 성당에서 함께 드린 미사라 그 감동과 감격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았다.

특히 연희동 성당 성가대의 사명이라는 특송은 순례객들의 마음에
신심이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성지 방문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일상 속에만 머무르며
습관적으로 바치게 되는 기도와 신심활동의 중심에 주님이 가장 강력한 핵심으로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지는 어디가 됐든 자주 방문을 하여
신앙 선조들의 그 꿋꿋한 믿음을 본받아야 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점심 식사 후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꼼꼼히 둘러보며 전시된 자료들을 살펴보니
그동안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게 전부인지라
얼마나 무지했었나 하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어 몹시도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전시관의 자료들 중에는 김대건 신부님에 관한 자료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한 훌륭한 사제분 들의 기록 또한
많은 유물과 사진으로 남아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둘러 본 전시자료들 중에서 옥에 갇혀서도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한글로 보낸 서한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내용 중의 한 대목을 옮겨 본다면,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예수 승천 후 종도때부터 지금까지 이르러 두루 무수 간난 중에 자라니......
오늘날 군란이 치성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너희들까지 환난 중을 당하니,
우리 한 몸이 되어 애통지심이 없으며,
육정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앗기까지 기다리라.....
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도 두려워하기 보다 이를 담대히 받아들이며 조선의 첫 사제로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신자들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절절히 표현한 것에서
다시한번 신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타일로 모자이크 된 14처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다.

14처의소재가 특이한 탓인가 저절로 예수님의 고통이 묵상되어
마음을 보아 정성껏 기도를 바치는데
7처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하며 눈물이 솟구쳤다.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이 두 번째 넘어지셨다”는 대목이 마치
우리의 회개를 위해 기꺼이 몸바친 예수님의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와 닿았기 때문인 듯하였다.


제 1 처 제 2 처
제 3 처 제 4 처
제 5 처 제 6 처
제 7 처 제 8 처
제 9 처 제 10 처
제 11 처 제 12 처
제 13 처 제 14 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김대건 신부님은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
마카오에서 신학은 물론 일반 학문과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를 배워서
중국어는 중국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잘 하였고,
프랑스어는 통역을 맡을 만큼 능통했으니
그 시대에서는 가히 국보적인 존재라 할 만 하였다.

게다가 학문적인 능력만 탁월한 게 아니라 지혜와 열정을 함께 소유한 보기 드문 진정한 목자이셨다.

아버지는 참수 당하고 어머니 또한 의탁할 곳 없는 비참한 몸으로 떠돌아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자신이 조선에 돌아왔다는 말을 어머니께 전하지 말라고 엄중히 당부할 만큼
오직 목자 없는 양 떼와 같은 조선교회를 생각하면서 교우들을 위한 삶을 사셨던 분이다.


김대건 신부님이 사목에서 이런 결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완전히 헌신하면서
위험과 어려움, 굶주림과 건강상의 위험, 박해들을 두려워하지 않은 열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대한 믿음의 대가를 지불하려는 희생의 자세가 되어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끊임없이 떠나가신,
오직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믿음을 갖고 사는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신앙을 되돌아 보게 한다.

지금 이 시대에 조선시대처럼 피 흘리는 박해는 없지만 우리 삶에서 시련과 아픔,
고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걸맞는 삶은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와 부르심을 따르는 삶에서 보다 명확히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 하늘이 청명한 날에 참으로 기억될만한 성지 순례였기에 오래도록 가슴에 새기며
앞으로의 내 남은 삶은 주님만을 믿고 따르는 데 바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였다.

* 대구 월평본당 김정수 신부님이 쓰신 『성김대건』도서를 참고하여 부분적으로 발췌한 내용도 들어 있음을 밝혀둔다.

 

솔뫼성지 소개

솔뫼성지는
충청도 내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솔뫼는 ‘소나무로 이루어진 산’, 곧 송산(松山)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다.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이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9대 선조인 김의직이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우자 가문이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1784년경 김대건 신부님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다. 김 신부님 가문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잦은 박해로 가족들이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순교까지 하여 솔뫼를 ‘순교자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1906년부터 합덕본당 주임 크렘프 신부님은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하여 인근의 토지매입을 시작하였고, 1945년에는 백 빌리버 신부님이 솔뫼에 김대건 신부 복자비(福者碑)를 설립하였다.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을 계획적으로 시작하여 1982년에 대전교구는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고,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2004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생가를 복원, 2005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건립하여 이제 솔뫼성지는 ‘순교자 신앙과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성 김대건 신부님 소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 김대건 안드레아(金大建, Andrea, 1821-1846)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과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대건은 10세 전후인 1830년경에 솔뫼를 떠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용인 산중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1836년에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와 만주에서 수학을 하였다.
1845년에 한국인 최초로 천주교 사제가 되었으나, 이듬해에 국사범으로 체포되어 9월 16일에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순교자 김대건 신부님은 192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복자품에 올랐고,
1949년에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정해졌으며, 19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순교자의 집안
솔뫼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가문이 정착한 것은 8대 선조(守完, 1643-1725) 때부터입니다. 김 신부님 가문이 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큰할아버지 종현(淙鉉, 1764-1806)과 할아버지 택현(澤鉉, 1766-1830), 그리고 작은할아버지 한현(漢鉉, 1768-1815) 때부터입니다. 종현과 택현은 여사울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명례방(명동)의 김범우에게 교리를 배워 1784년경 한현과 함께 입교를 하였습니다. 그후 1788년경에 김 신부님의 증조할아버지 김진후(족보명은 運祚, 1735-1814)가 입교하자 전 가족인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김진후는 신해박해(1791년) 때 솔뫼에서 잡혀 문초를 당하였으나 순교에는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 후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김진후와 종현과 택현도 함께 체포되어 고문과 심문을 당하다 김진후는 배교 의사를 밝히고 죽음을 면하고 솔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1805년에 김진후는 다시 잡혀 순교를 결심하고 10년간 해미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76세로 옥사를 하였습니다. 이때 그의 아들들은 솔뫼를 떠나 종현은 전주로 한현은 안동으로 피신하였습니다.
한편 이곳 솔뫼에 남아있던 김 신부님의 할아버지 택현은 제봉(濟鳳, 1790-1821), 제인(濟麟, 1795-1839), 제철(濟哲, 1803-1855)을 낳았는데, 그중 둘째 아들 제인이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제준(濟俊)입니다. 김제준은 장홍 고씨를 아내로 맞아 1821년에 김대건 신부님을 솔뫼에서 낳았습니다. 본시 김대건 신부님의 아명(兒名)은 재복(再福)이고 족보명은 지식(芝植)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정해박해(1827년) 때 용인 골배마실로 피신할 때까지 이곳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솔뫼에서 태어나시거나 사신 분들 중에 순교가 확실한 분들은 김진후(증조부), 한현(증조부), 제준(아버지), 데레사(한현의 딸), 손연욱(데레사의 남편), 제항(증조부 회현의 아들), 제교(종증조부 귀조의 손자), 김대건 신부님, 진식·근식(숙부 제철의 아들들), 조씨(종조부 회현의 손자며느리) 등 11분이고, 그밖에도 순교하신 것으로 추정되는 분은 김택현(할아버지), 희현(막내 작은 할아버지), 선식(막내 작은 아버지 제철의 아들) 등 3분입니다. 이렇게 김 신부님의 가문은 시조 66世(증조 16世)부터 69世(증조 19世)까지 4대에 걸쳐 순교하셨습니다. 이분들 중 현재까지 성인품에 오르신 분은 김제준(이냐시오)과 데레사, 그리고 대건 신부님 등 3분입니다.

김대건 신부님 생가
김대건 신부님은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116번지에서 태어나셨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인 모방 신부님이 작성한 《최 프란치스코, 최 토마스, 김 안드레아 신학교 입학 추천서 및 서약서》에 “Andreae Kim Mintyen Solmay Tchongtchingto prov. oriundi (충청도 면천 솔뫼 출신 김 안드레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문서는 김대건 신부님 출생지가 ‘솔뫼’라는 교회의 최초 공식문서이다.

김대건 신부님의 가문은 솔뫼에서 신앙을 지키다가 파가되었다. 통정대부라는 관작(官爵)을 유지하던 증조부 김진후는 1801년 신유박해 때 물고죄인이 되었다가 평민으로 강등되어 신분과 재산을 잃었다. 그 후에도 증조부는 체포되기를 반복하였고 가족들은 관졸들로부터 약취와 괴롭힘을 당하였다. 가세가 기울자 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조상이 물려준 솔뫼의 토지와 가옥을 마지막까지 지키던 조부 김택현 마저 세상을 떠나자 부친 김제준은 아들 김대건이 10세 될 무렵인 1830년경에 가족을 이끌고 상경하였다가 경기도 용인 산중으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도모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의 가족이 솔뫼를 떠날 무렵 내포 전역은 매년 풍수해로 기근을 맞고 있었다. 이무렵 최양업 신부님 가족들처럼 고향 내포를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 김대건 신부님의 솔뫼 생가는 돌보는 이 없이 폐허가 되어가다가 기근에 떠돌던 외지인들이 허물고 초가를 짓기를 몇 차례 하였다. 대지 일부를 밭으로 만들어 와편을 골라내며 경작을 하다가 정착을 하였다. 다만 그 집터가 과거에 내포에서 부유했던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지라는 사실이 내포 신자들에 의해 구전되었다. 그 같은 교회 전승과 순교자 증언록에 근거하여 1906년에 토지 매입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합덕본당 크렘프 신부님이 솔뫼에 있는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지 확보하려했으나 정착인들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신 생가지 인접 논을 매입하여 훗날을 기약하였다.

1945년에 백 페랭 신부님이 솔뫼 성지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있는 곳 일부를 매입하여 솔뫼 성지 개발의 초석을 놓았다. 6.25사변이 끝나면서부터 합덕본당 박노열 신부님은 매년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하여 오늘의 한국 성지순례 신심을 정착시켰다. 마침내 1977년 국가의 지원으로 김대건 신부님 생가지를 확보하였다. 그 후 수차례 생가복원 사업계획을 수립했으나 실천하지 못하였다. 1998년 생가지를 충청남도가 지정문화제 제146호로 지정하면서 지자체 지원과 고증을 받고 김대건 신부님 생가지에 2004년에는 생가 안채를 복원하였다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대전교구가 힘을 모아 2005년에 김대건 신부님의 뜻 깊은 신앙과 성덕, 그리고 사상과 행적을 기념하고 기리며 전하기 위하여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김 신부님의 기질과 성품에는 충청도 내포라는 지리적·문화적·사상적 특성이 끼어 있다. 김 신부님의 서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분은 가문의 전통과 신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뿌리에 대한 의식 또한 깊었다.

김대건 신부님은 수계(水系)가 발달한 내포에서 태어나 아동기를 보냈기 때문에 강이나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다. 내포인들이 바다로 나가 교역하며 새로운 문물을 전하고 가져왔던 것처럼 김대건 신부님도 신학생 시절에 항해술을 배우지도 않았으면서도 바다에 대한 투지와 의지가 남달랐다. 김대건은 부제품을 받고 임시 국내에 잠입하였다가 볼 일을 마치고 사제품을 받기 위해 1845년 봄에 11명의 신자들과 함께 제물포에서 작은 목선을 띄우고 서해바다 풍랑을 뚫고 중국 상해에 도착한 것이나 그해 9월에는 다시 같은 배로 서해바다를 통하여 귀국한 것을 보면 그분의 바다를 향한 투지나 신념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김대건은 신학생 시절에 조선을 목적지로 하는 프랑스 함대 에리곤의 통역관으로 승선하여 외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국내에 도입하려 한 것이나 만주 팔가자에서 요동벌판을 지나 장백산맥을 넘으며 입국을 시도했던 의지나 기지도 물을 다루는 내포인의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님이 1846년 국사범으로 체포되어 3개월 동안 포청에서 문초를 받으며 보여준 신진사상은 이 나라가 봉건왕조사회에서 근대민주국가사회로 넘어가야 한다는 안목을 느끼게 한다. 당시 조선은 김대건 신부님의 신진사상을 수용할 만큼 열려있거나 성숙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분을 희생시켰으나 그 후 조선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를 맞게 된다. 김대건 신부님을 단순히 특정 종교 성직자로서만이 아니라 내포인의 기질을 간직한 그분이 지녔던 변화되어서는 안 될 것과 변화되어야 할 것에 대한 분별과 투신은 오늘의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된다.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은 그분과 내포인들, 그리고 내포에서 하느님을 믿다가 순교한 분들의 신앙과 성덕을 오늘의 우리와 후손들이 배우고 전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또한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은 내포의 과거 교회와 신앙과 문화에 대한 제시나 대화뿐만 아니라 현재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조망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 기념관과 성당은 '라파엘호'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것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수반과 같은 형상으로 설계·건립하였다.




솔뫼성지 기도

오로지 진리를 따라 살며,
구원의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여
천주께로부터 승리의 월계관을 받으신 성 안드레아여,
당신은 하느님의 법을 지키기 위해 죽기까지 싸우며
고통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랐으니,
저희들도 당신의 순교정신을 본받아,
어떠한 현세적인 박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한 마음으로 충실히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한국 사제들의 주보이신 성 안드레아여,
이 땅에 사제의 수를 많게 하시며,
또한 그들이 당신의 뒤를 이어 훌륭한 사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드리는 저희를 생각하소서.
또한 십자가 아래 하나 되어,
순례의 길에 오른 저희들을 기억하시어
순교정신을 본받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은혜를 얻도록
천주께 빌어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 성지 사진 】

성지 입구 전경

성지 입구 전경

예수성심 상

애덕비

망덕비

모자상

생가

생가

신부님 동상

조각상

소나무 숲

성당 앞 모습

성당 뒷 모습

성당 내부 좌측

성당 내부 우측

이름아이콘 아녜스
2013-04-28 02:13
회원캐릭터
꼭 성지에 다녀온 기분입니다.
   
이름아이콘 도로테아
2013-04-28 21:49
회원캐릭터
올해는 본당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각구역별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로 정하였는데 성지는 그 어디가 됐든
신앙 선조들의 뜨거운 순교 열정이 담겨 있는 곳이라 우리의 신앙심 고취에 무엇보다 소중한 순례가 되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름아이콘 사랑합니다
2013-05-14 11:30
성지 소개를 너무 잘 하셨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다녀 오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이름아이콘 관리자
2013-05-16 16:02
좋은 글을 읽으면서 성지순례 할 때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도로테아님께 배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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