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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답사자료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6-25 (화) 17:05
ㆍ추천: 2  ㆍ조회: 4397    
무제 문서

글쓴이 : 유옥분 글라라
사진 : 정채현바실리오
일시 : 2013년 5월 24일

<내포지역 교회 신앙의 못자리였던 합덕성당>

합덕성당은 현재 내포도보성지순례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수많은 순례자들을 품고 있다.

한국 교회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첫머리에는 내포교회가 있다. 내포는 아산에서 태안까지 평야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삽교천과 무한천 두 물줄기가 흐르는 충남 중서부 지역을 일컫는다. 내포 지방은 예로부터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지였다.
한국 천주교 창설 직후 ‘내포의 사도’ 라고 불리는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1752-1801년)이 세례를 받고 충청도 일대에 천주교를 전파하면서 교세가 크게 번창하게 된다. 이른바 내포(內包)는 한국교회의 신앙못자리로 불릴 만큼 뛰어난 교세를 자랑하며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산만 일대의 내포(內包) 지방은 예로부터 충남지역 천주교의 중심지로, 내포공동체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언제나 주목을 받는 곳이었다.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이후 1868년 ‘무진박해(無瞋迫害)’때 까지 이곳은 박해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탄생시켰다.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신부 집안도 이곳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박해시대 한국에서 활동한 성직자들은 거의 이곳을 거처갔다. 합덕 본당의 초창기 관할 구역은 이존창이 활동하던 지역들과도 겹쳐진다. 이후 1860년대 초 베르뇌 주교가 전국을 선교사가 상주하는 8개 지역으로 나눌 때도 내포지역은 상부내포, 하부내포로 나뉠 만큼 신앙생활이 활발하게 이어지던 곳이었다.
조선과 프랑스의 수교를 통해 다시 돌아온 선교사들에게 내포지역 교회는 여전히 주목할 만한 곳이었다. 1890년 이 지역에는 양촌본당과 간양골본당 두 개 본당이 설립됐다. 하지만 간양골본당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본당 신부의 병으로 인해 폐쇄되고, 양촌본당은 이후 충청도 남부지역 본당들의 모 본당으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합덕성당을 중심으로 ‘황무실’과 ‘신리성지’ ‘솔뫼성지’ ‘여사울성지’ 등이 사방 3~4Km 이내에 위치하여 내포 도보성지 순례의 ’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여사울성지’에서 ‘신리성지’ 합덕성당‘을 거쳐 ’솔뫼성지‘까지 약 15.5Km의 여정이다. 순례길 전체가 신앙의 터전이자 순교현장이라 할 수 있다.

도로변의 안내판

성당안내표와 유스호텔 안내표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교회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유서 깊은 순례지로 알려진
합덕성당에 들어선 합덕유스호스텔은
순교 역사를 간직한 교회(교구)와 지자체가 손을 잡고
청(소)년들을 위한 안식처로 마련했다고 한다.

설립 120주년 기념비

2010년 12월 25일 본당 설립 120주년을 기념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비는 높이 5.02m. 폭1.05m이라고 한다.

‘1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신앙생활을 다짐하며 이 비를 세웁니다.‘

라고 쓰여 있다.
기념비 뒤로 희미하게 길게 드리워진 도로를 따라
동화속의 왕자가 살았을 법한
시골의 성 같은 느낌이 드는 합덕성당이 보인다.~~

설립 120주년 기념비 뒷면

살아보자!, 해보자!, 가보자!,
말씀대로 살아보고. 실천해보고. 저 천국에 가보자.
혹시라도 신앙의 해를 맞이하여 본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성경읽기, 쓰기, 듣기 등을 아직도 시작하지 못 하신분이 있다면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두 개의 첨탑은 신앙의 파수꾼인가?'

저 언덕위에 두 팔 벌리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복음 11장 28절)

하시며 손짓을 하시는 듯하여,
어머 어찌 아셨을까?
매일을 내 십자가 버겁다고 징징거리고 있음을 …….
속으로 되뇌며 한달음에 언덕을 뛰어 오르고픈 설렘 속에 첫발을 내딛는다!~~.....

성모동산

성모님 뒤로 예수님과 성당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따스한 봄 햇살처럼 내 마음을 녹인다.
이 동산은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너울너울 피어올라 하늘에 닿을 것 같다.
이 동산에서는 기도하는 저 소녀의 간절한 기도처럼
모든 이들의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다 성모님의 전구로 응답받았을 것 같기에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

“ 오, 거룩하신 어머니 저 자신과 이세상의 모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또한 이 세상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필리피서,3장 7절)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고백함 같이
우리들의 신앙 여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순간들에서
바오로 사도 같은 선택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저 계단만 오르면 고지달성인데,
헉! 눈앞에 펼쳐져있는 계단들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마치 천국계단이 이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이처럼 내가 올라선 계단만큼은 내가 살아온 여정이며,
그리고 올라가야할 계단 수는 앞으로 내가 한 땀 한땀 수 놓아야 할
내 미래에 또한 내가 선택하여 가야할 여정인 것을~~~~

그리스도 신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려보는 성가정상이 아닐까?
본당 설립 118주년을 기념해 본당 주보인 성가정상 축복식을 가졌다.
파리 제2대학 예술 학부 교수로 있는 저명한 조각가
최영철(바오로)씨가 제작한 이 성가정상은
높이240cm 폭120cm 크기로, 전통 한복차림의 성가정 이미지로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에 자생하는 아카시아나무로 제작한 목각상으로는 세계최대를 자랑한다고 하며,
이 아카시아 나무는 이스라엘에서 제단이나 증거궤,
성막의 널판 제작 등에만 쓰는 특별한 재질의 나무여서 특히 뜻이 깊다한다.
서 계시는 요셉성인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예수님을 안고계시는
성모님의 겸손한 모습은 요즈음 세대주부들이 본 받아야 할 모습은 아닐는지…….

성모님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가정을 위한 기도를 해본다.

'신앙의 해'를 맞이하여 전대사 지정성당이라는 안내표지다.

200백 여평 규모의 붉은 벽돌 건물로
당시 돈 1만원이 넘는 공사비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돈은 쌀이 귀하던 당시 쌀1800가마에 해당한다.
성당을 짓고자 중국 기술자들을 불러 왔으며
신자들은 멀리서 점심을 싸가지고 와서 노력봉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성당 오른쪽 측면

건너편에 유스호스텔이 있다.

계단을 올라와서 성당의 우측면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출입구는 세 개의 문으로 되어있습니다.

성당 내부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합덕성당과 공세리성당은 한 설계자라고 합니다.

신자들은 누구나 자기자리가 있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나 자신도 자리를 바꾸어 보려고 하나 잘되지 않는다.
고집이 센 것일까?
이곳도 각자의 자리가 있을까?

좌청룡 우백호 라 하였든가?
좌측에는 성가정상과 예수님이,
우측에는 예수성심상과 성인들의 유해와 성모님께서 계시니
이 어찌 풍요롭다 아니할 손가?
이렇듯이 풍요롭게 3~4대가 모여 살던 대가족 시절에는
여유와 배려가 늘 넘쳐 나던 것 같다.
비록 혈육으로 맺어지진 않았어도 영적으로 주님이 맺어주신
부모님과 자식들을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도시에서 늘 대하던 삭막한 제대만을 일상으로 바라보던 눈이
오늘은 무진장 호사를 한다.

앵배르 주교와 김대건 모방 샤스탕 신부 성인 유해

합덕본당은 6년전 갈매못성지로 옮겨졌던 성인들의 유해를 다시 모셔와 안치시킴.
유해는 성 김대건신부의 다리뼈 일부분과
성 앵배르 범라우렌시오 주교, 성모방나베드로 신부, 성 샤스탕정야고보 신부의 머리카락이다.

성가정 성화가 눈에 들어온다.

제대가 유난히 깊다.
이곳에서 신부님의 수발을 드는 복사 아이들이 참 복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식 도시 성당의 제대와는 너무도 다른 정겨움이 깃든다.

'지극히 감미로우신 어머니
제가 여기 어머니 앞에 겸손되이 꿇어 기도하오니
저희들의 마음이 주님의 성심을 헤아리게 하소서!'

오른쪽 신자석과 회랑

맨 앞쪽에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 앉아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성인들의 삶을 본받아 신학교와 수도회에 입회하였겠지~
그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본다.
예수님이 기뻐할 수 있도록 참 목자의 길을 가시라고…….~~

왼쪽 신자석과 회랑

제대 쪽에서 바라본 성당 입구

제대 쪽에서 바라보니 내 입장이 아닌
예수님의 눈으로 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자들이 보이는 것 같다!
환히 웃으며 들어오는 베드로 부부 굳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마리아 ~
오늘은 우리 마리아가 무슨 일로 저리 표정이 굳었을까?
미사시작 5분후 들어오는 누구, 누구,~~
"에이그 이 녀석들아 조금만 더 일찍 와서 미사 전에 묵상 좀하지 쯔쯔……."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고백소가 성당모형을 본떠 만든 것 같다.
특이함 때문일까?
죄에 대한 무거움 보다는 고백에 대한 한 가지 우스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성당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한 자매님이 오랜만에 고백성사를 보기로 했다.
하지만 성당에서 모범적으로 소문이 난 자신이 본인의 목소리를 잘 알고 계시는 신부님께
부끄러운 죄들을 다 털어 놓자니 너무 창피한 생각이 들어 고민스러웠다.
다른 성당으로 갈까?
아님 안면몰수하고 본당에서 볼까?
고심 끝에 본당에서 하기로 결심을 하고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고백할 때, 코와 입을 손수건으로 막고 하면 신부님이 내목소리를 못 알아들으시겠지?
고해소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준비해 간 손수건을 꺼내어 코와 입을 막고
계획대로 답답한 코맹맹이 소리로 속 시원히(?) 고백을 마쳤다.
그리고 신분님의 영적 훈화와 보속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신부님의 첫 말씀…….

“테오도라 자매님 감기 드셨어요???”

봉헌함 또한 성당 외부 쌍 탑을 모형으로 만든 것 같다.
그런데 왜 한쪽으로 기울었을까?
천원짜리만 넣는 천주교라 수표나 만원짜리도 넣어달라는 애교어린 자탠가?
기억에 남을 봉헌함이다.

성당 입구 오른편에 있는 성수통

왠지 항아리가 정겹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으나
성수를 담을 통이 준비되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 하고 ~~

성당 내부에 있는 성수대

성수를 찍어 기도해 본다.
“주님 이 성수로 내 죄를 씻어 없애시고 마귀를 쫓아내시고 악한 생각을 없이 하소서. 아멘”

구 합덕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비

성당 정문 왼편으로 돌면 왼쪽 벽면에 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합덕성당을 위하여,
한국의 내포교회를 위하여,
한국교회의 우리 모두를 위하여 파수꾼처럼 굳건히 지키고 계시는 듯 하여
편안히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해 봅니다.

은행나무

잠시 쉬고자 앉은자리에서 바라보는 나무는
두꺼운 두께만큼 얼마나 많은 사연들 품고 있을까?
저 늘어진 가지들처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5장 5절)

꼭 붙어있어야지!!!!!

십자가의 길

성당앞쪽 왼쪽 편으로 길게 드리워진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해보자!
나는 과연 내 인생여정 길에서 버리거나 흘린 십자가 얼마나 많을까?
되놰보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제라도 내 십자가는 기꺼운 맘으로 내가 지고 가고 싶다~~~

길 오른편에 십자가의 길이 있다.

성당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6.25순교자인 페랭 백문필 신부와
윤복수(라이문도)총회장,
송상원(요한)복사의 순교비가 나란히 있으며,
백신부님의 묘와 네 분의 신부묘소와
백신부와 함께 순교한 총회장과 복사의 묘소가 있다.

합덕성당은 6.25한국전쟁 당시 당진시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냈다한다~
그 분들의 피 흘림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기도드려본다.

평신도 순교비

“6.25순교자 희생정신 본받자!”
왼쪽부터 황석두루카 성인,
7대주임 페렝 신부,
윤복수(레이문도) 본당회장,
송상원(사도요한) 복사 합덕본당 제7대 주임신부이신 페렝 신부님은 참 목자의 삶을 사셨다한다.
그는 한국전쟁인 6.25때 '남은 신자 한명을 위해서라도 본당 사제는 성당을 지켜야 한다며
보좌인 박노열 신부를 남하시키고 홀로 성당에 남아 있다가
성모승천 대축일전날 고해성사중 인민군에게 끌려가 순교하셨다' 한다.
윤복수 회장은~ “나는 본당 회장이요 신부님과 함께 데려가시오“
송상원 복사는 ~ “나는 신부님을 모시는 복사요 함께 잡아가시오”
모두들 피신하는 마당에 두 순교자는 본당 신부 곁을 지키며 자발적으로 붙잡혀가
그해 9월 대전 목동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목숨을 초개같이 여겨 순교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순교비와 묘 앞에 고개 숙여 순교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해본다.
아울러 세상 속에서 이제라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보리라 다짐해본다.

숭고한 역사만큼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한 성당답게 성소를 위한 기도가 있다.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영적 지도자이신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해본다.

지금까지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합덕성당에 대한 소개를 마칩니다.

위치 :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 275

2013년 5월 24일 유옥분(글라라)

이름아이콘 e-세상
2013-06-27 17:52
회원사진
시간과 인내만 필요한것이 아닙니다.
혼(魂)을 담은 정성과 노력에 갈채를 보냅니다.
늘 함께 즐길줄 아는 유 글라라 자매님 정 바실리오 형제님 감사드립니다
언제 짝과 함께 다녀와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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