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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답사자료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6-21 (금)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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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문서

글쓴이 : 유옥분 글라라
사진 : 정채현바실리오
일시 : 2013년 5월 24일

<해미순교자에 대한 신심으로 가득찬 유서 깊은 서산 동문성당>

대전 교구인 서산 동문동 성당은 2007년 4월 30일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21호로 등재됐다 대전교구에서 최초로 등록문화재에 등재된 서산 동문동 성당은 충남 서산시 동문동 665-3 소재하고 있으며 본당 설정은 1908년 5월 9일 합덕 본당에서 분리되어 충남 결성군(현 홍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된 수곡 본당이 전신이며, 주보성인은 수호천사다. 서산 지역 신앙 공동체는 충청도 지역 최초의 본당인 합덕 본당 산하 공소로 출발하였다. 1908년 이 지역을 이관 받은 폴리(D. Polly, 沈應榮) 데시데리오 신부가 서산 지구 본당을 홍성군 구항면 공리에 설립 · 운영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본국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자, 다시 합덕 본당으로 합병되었다. 1917년 안학만(安學滿) 루카 신부가 서산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본당을 팔봉면 금학리로 옮겼다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본당에 복귀한 폴리 신부가 다시 주임으로 부임, 1919년 10월경 현재의 상홍리 공소 자리에 강당 및 사제관을 신축하였으나 얼마 후 서산 군 소재지에 가까운 음암면으로 옮겼다. 현성당은 1934년~1937년 제5대 주임신부인 바로(P.Barraux)신부님이 충남 서산시 동문동 665의 3현 부지에 신축 준공한 교회 건축물이다.

성당앞 주차장에서 본모습

커다란 두 그루의 벚나무 사이에 잘 정돈되어 있는 성모동산과
그 뒤쪽으로 보이는 성당은 부춘산 능선을 따라
마당 끝에 우뚝 선체 청명한 햇살을 받아 소박한 미소로 반긴다~
바실리카 평면 구조에 입면은 장식을 지극히 간략화 시킨 고딕양식 교회건축이다.
장미창 하나 없고 그 흔한 벽돌 성당도 아니다
시멘트 블록으로 쌓아올려 그 흔적을 시멘트 덧칠로 가린 맨살 그대로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지극히 절제된 성당이라 그런지 왠지 그 소박함이 정겹다

성모 동산

언제나, 늘 그러하듯이 성모님은 겸손하신 모습으로 우리들을 반기신다.
수태고지 때도 이런 모습으로
“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응답하셨겠지?
이 순간 어머니께 기도해본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도구가 되겠다고…….

수호천사상

동문동 성당의 주보성인이다.
성당과 사제관을 불철주야 두 눈 부릅뜨고 지키고 있는 듯하다.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를 바쳐본다…….

성당 표지판

표지판 글을 읽어 보면 다음과 같은 글로 적혀 있다.

충난 서산지역 천주교 선교회의 모체인 동문동 성당은 1908년 결성군 구항면 공리에 수곡본당이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초대 신부는 폴리 심응영 신부이다. 현재의 성당은 제6대 신부인 바로 범 베드로 신부가 1934년 현 위치에 토지를 매입하고, 1937년 신축 완공 하였으며 배면부는 1957년 증축 하였다. 성당내부는 중앙의 신랑(身廊)과 좌우측면의 측랑(側廊)으로 구성되는 3랑식이고 신랑은 배럴볼트 천장으로, 측랑은 평천장으로 구성하여 내부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전면 주출입구 상부에는 반원 아치창과 원화창을, 좌우 출입구에는 원화창만을 배치하여 위계를 두고 있다. 중앙 종탑과 현관부는 돌출시키지 않고 하나의 면처럼 처리하여 단아한 느낌을준다.

계단 옆의 성모상

벼는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진다고 한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성모님은 항상 다소곳이 겸손한 모습이시다.
하느님께서 그 모습에 천주의 어머니로 성모님을 택하셨을까?
내가 어머님의 겸손한 모습으로 산다면 지금 사는 세상이 천국이련만~~~

서산 동문동본당 공동체는
1956년 해미 서문 밖 다리로 쓰던 순교돌 자리개 돌을 경내로 옮겨왔다가
1986년 원래의 자리인 해미 서문 밖으로 되돌려준다.
이후 1987년 본당설립 70주년을 맞이하여 자리개돌이 있던 자리에 기념비를 세우고
순교자들의 영광을 기린다.
기념비 앞에는 형구틀이 놓여 있는데~
순교자들의 목에 밧줄을 맨 뒤 형구돌 가운데 구멍으로 줄을 잡아 당겨
사형을 집행했다는 형구돌에는 아직도 피가 배어 있는 듯 붉은 흔적이 남아있다.
(기념비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자리는 해미병인순교 자리개돌이 1956년 6월 14일 신균식 신부의 지도로 이곳에 옮겨졌다가 1986년 8월 29일 본래 있던 읍성 서문 밖으로 되돌아간 자리로서 본당창립 70주년을 맞아 이인하 신부께서 이를 기년하기 위하여 이 돌을 세웠으니 우리들은 순교하신 진복자의 영광을 천주께 바칩시다.
1987년 5월 31일(예수승천대축일)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교회

옆에서 본 성당 전경

동문동 성당은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중앙부분 신랑(新郞,nave)과 성당 양쪽 좁고 긴 복도 부분인 측랑(側廊,aisle)에 아치형 출입구를 두고 각각의 아치에 3개의 원형 창문을 높이에 따라 배치, 입면을 구성하고 있다. 성당 출입구쪽 지붕이 자리한 포치(porch)나 종탑 부분이 돌출하지 않은 채 평평한 입면 구성을 보여주는 상당 건축물이라는 점도 특색이라 한다. ‘신랑(新郞,nave)이란?~~’배‘라는 의미의 라틴어 ’나비스(navis)에 유래한 건축용어로서 초기 기독교의 바실리카식 교회당의 내부 중앙 부분으로 측랑이 양쪽에 붙어 있는데 열주에 의해 구분된다. 정면 현관 복도에서 대진에 이르는 중앙의 긴 부분으로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된다. 측랑(側廊,aisle)이란?~~바실리카식 건축이나 교회 내부의 중앙 부분을 이루는 회중석(會中석)또는 신랑을 사이에 둔 양쪽 통로를 말한다.

성당 우측면이다. 옆에 서있는 소나무가 앞쪽으로 밭이 보인다. 시골의 정취가 느껴진다.

출입문

이 길을 따라가 보면 뒤쪽으로 바로동산이 나온다.

성당 후면부

화려함보다는 단조롭고 소박함도 아름다울 수 있다더니 정말로 소박함속에 묻어 마음이 정화되는듯하다.

바로 동산에서 바라본 성당 우측면

성당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제대를 중심으로 바라본 성당 내부

내부에서 바라보면 신랑(nave=신자석)과 측랑(aisle)으로 구성된 바실리카형 구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양쪽에도 신자석을 두고 있지만 원래는 가운데에만 신자석을 두고 양쪽 아일은 통로역할을 하며, 각종 성상들이 모셔진 제단 또는 성화 등으로 구성되었다 한다.

좌측 회랑과 신랑

맨 앞으로 나아가면 제대 왼쪽으로 김대건 안드레아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당 설립 100주년을 기해 한국 첫 사제이신 신부님의 유해를 소제대에 안치했다고 한다)
고고히 흘러온 100여년의 역사를 품에 안고 함께 모셔져 있는 성인의 유해를 맞이하고 보니
나의 지난날의 삶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 처럼
주님이 나를 불러주시기 전에는 한낱 몸짓에 불과 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라도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해 보았다.

우측회랑과 신랑

이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눈물과 기쁨의 순간들이 있었을까?
또 베드로를 비롯하여 수제자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신앙을 저버리고
옛날로 돌아가 헤매다가 다시 돌아와 성령을 체험하고는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순교한 것처럼
각자의 삶속에서 주님을 전했을 동문동 성당의 신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좀 더 제대 쪽으로 다가감.

제대 앞으로 다가감

한 발짝 한 발짝 제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의 아집과 오만과 편견과 모든 더러운 것들이 씻기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다하는 날 주님께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오,3장17절)

라고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나도 들을 수 있다면…….

제대 꽃꽂이

꽃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건 자태를 뽐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또한 자신의 장점을 이용하여 주위를 더욱 빛나게 하니 나를 들어내기 위하여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해하려하는 인간에 비하면 말을 못할지라도
꽃의 운명은 숭고한 것 같다~~~

제대 쪽에서 바라본 모습

예수님께서는 늘 이렇게 저 문을 누군가 열고 들어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계실까!

출입문

굳게 닫혀 있는 문이 꽁꽁 얼어 있는 나의 마음은 아닐는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 신랑을 맞이하지 못해 혼인 잔치에 가지 못한 다섯 처녀처럼,
또한 소돔과 고모라에서의 쾌락의 삶을 못 잊어 되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롯의 아내가 되지 않으려면 늘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자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십자가의 길이 있는 바로 동산으로 가봅니다.

바로동산

1908년에 설립된 서산 본당은 제6대 본당신부였던 바로(Barraux, 범 베드로) 신부님께서 1937년 10월5일 현재의 신축 완공하였다 성당을 건립한 바로신부는 1935년 goal 하천변에 생매장돼있던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증인들의 고증에 따라 3개소에서 발굴 수습해 상홍리 순교자 묘역(1995년 해미성지로 원상 복구)에 이장해 서산 동문동 본당 공동체에 순교 신심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특히 1945년 1월초 바로 신부는 열병으로 사경 중에 있는 신자에게 병자성사를 주교 성체를 영 해주던 중 환자가 성체를 뱉어내자 이를 대신 영하고 전염병에 감염되어 선종했다 이런 바로신부님의 신심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 2007년 7월 29일에 십자가의 길 동산을 조성하여 '바로(Barraux)동산' 이라 부르게 되었다.

십자가의 길 제1처

1처를 시작하여 바로 동산을 한 바퀴 돌면 14처가 끝난다.
얕은 언덕배기라 힘들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묵상할 수 있다.

바로동산을 에워싸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담장안과 담장 밖의 세상을 구분하는 듯하다.
탱자나무너머에 있는 농토는 그저 농토이지만
탱자나무 안에 있는 바로동산의 모든 것들은 성스러움이 느껴짐에
나를 선민으로 선택하여 주신 주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성당을 건립하신 바로신부의 묘비와
6.25전쟁 때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압송되던 중 포격을 당해 행방을 알 수 없는 콜랭신부의
추모비가 서 있다 .

평지와도 거의 같을 정도의 야트막한 십자가의 길이다.

8처에서 9처로 가는 길

오른쪽 나무 뒤쪽으로 보이는 망은 토끼장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토끼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사람을 보고 달려드는 것을 보니 먹이를 많이 받아먹었나보다.
아기들이 있었다면 좋아 하겠구나…….

바로동산에 앉아서 성당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 학교 같다가 돌아오는 길에 굴뚝에서 스몰스몰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면
'엄마가 나를 위해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시구나!' 하면서
한달음에 뛰어 들어가면서 “엄마!” 하고 소리치던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성당모습이다.

제14처

이 14처만 끝나면 수고했다고 한숨 쉬어가라고 돌 탁자와 의자도 마련되어있다.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당당히 앉아 쉬어본다.

바로동산에서 성당 앞쪽으로 돌면서 아름다운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

사제관

사제관 창틀에는 마귀가 새까맣게 달라붙어있다더니 …….천사가 지키고 있네!

교육관

레지오 회합실 등은 사무실과 같은 건물에 있던데 이곳은 교육관으로 쓰이는 강당인가? 마지막임.

지금까지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이상으로 서산 동문동 성당 에 대한 소개를 마칩니다.

위치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665-3

2013년 5월 24일 유옥분(글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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